천년의 맛, 김치역사, 어느나라가 원조일까?

김치의 역사

절인 야채(김치)에 대한 최초의 언급은 중국의 시경에 처음 언급되었다.

in the Chinese Xin Nan Shan 信南山 poem of the Shi Jing (詩經).
김치 용어의 변화는

Ji(지)- 침채 (한자 : 沉 菜, 절인야채)- 딤채- 팀채(한국 삼국 시대)-김치이다.
The term ji - chimchae (hanja: 沉菜, lit. soaked vegetables)- dimchae- timchae (Three Kingdoms of Korea)
-The word then was modified into jimchi, and is currently kimchi.
초기의 김치는 배추와 쇠고기맛으로만 만들어졌다.
붉은 고추는 한국에서는 발견되지 않았던 새로운 세계의 야채였는데,
일본의 침략 (1592년~1598년까지)후 김치의 주 성분이 된것으로
유럽과 미국과 접촉후에 일본으로 부터 한국에 소개된 것이다.
(18 세기까지만해도 이 사실은 문서로 밝혀지지 않았었다).
번역 by Yujin A Hwang
History
The earliest references to pickled vegetables in East Asia are found in the Chinese Xin Nan Shan 信南山 poem of the Shi Jing (詩經).
The term ji was used until the pre-modern terms chimchae (hanja: 沉菜, lit. soaked vegetables), dimchae, and timchae were adopted in the period of the Three Kingdoms of Korea.
The word then was modified into jimchi, and is currently kimchi.
Early kimchi was made of cabbage and beef stock only. 
Red chili, a New World vegetable not found in Korea before European contact with the Americas, was introduced to Korea from Japan after the Japanese invasions (1592–1598) and became a staple ingredient in kimchi,although its use was not documented until the 18th century.

천년의 맛, 김치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 앞둔 ‘K-푸드’ 의 세계화 첨병 김치…
‘어울림’ 정신 담고 21세기 지구촌 가장 ‘핫한 음식’ 으로
Updated 2013.11.08.
고춧가루가 들어간 김치는 18세기 중반께 선보이기 시작한 것으로 보인다. 
‘농가월령가’(1816년)에는 김치의 필수 양념으로 고추ㆍ마늘ㆍ생강ㆍ파를 소개했다.
반가의 음식에서 점차 대중화가 이뤄지기 시작한 것도 19세기 초로 추정된다. 
이 즈음 한양 주변에는 배추밭이 많이 들어섰으며, 정약용은 ‘경세유표’에서 경성근처의 밭을 가장 좋은 전답으로 꼽았다. 
다산은 그 자신 마당의 절반을 떼어내 배추를 심고 매일 들여다보며 애정을 보였다. 

김치의 생활화가 이뤄진 건 20세기초에 이르러서다.
 재배면적이 넓어져 값이 싸지면서 지역마다 집마다 다양하고 특색 있는 김치들이 생겨나기 시작했다. 

중략...
김치는 본질적으로 섞임을 지향한다. 
김치에는 새우젓, 갈치젓 등 각종 젓갈과 청각ㆍ무ㆍ파 등 각종 채소와 양념 등 
수십 가지의 재료가 들어가 한데 버무려져 맛을 만들어낸다. 
이 양념과 배추가 시간과 함께 숙성되면 또 한 번 화학적 변화가 일어나 
유산균덩어리의 건강발효식품으로 태어난다. 김치의 유산균은 요구르트보다 훨씬 많아 약으로도 개발될 정도다.

김치의 이런 어울림의 정체성은 식탁에 올랐을 때 더욱 빛을 발한다. 
김치는 홀로 자랑하지 않으며, 밥과 다른 음식에 어울려 포만감을 주고 풍미를 더해준다. 
특히 고기와의 환상적인 궁합은 고기를 주식으로 삼는 서구인의 입맛마저 빼앗고 있다. 
김치는 또한 변신을 좋아한다. 전과 찌개, 국, 볶음, 볶음밥, 김치버거까지 본질을 잃지 않으면서 
잘 어울려 입맛을 개운하게 해준다. 

김장문화에는 바로 그런 김치의 정신이 녹아 있다. 중략...
유네스코 위원회는 이런 김장문화를 김치와 함께 무형문화유산으로 등재 권고하고 
“한국사회의 역사에서 지속적으로 재창조돼왔고 공동체의 연대감과 정체성을 증대시켰다”고 평가했다.
오는 12월 유네스코 인류무형문화유산 등재가 확실시된 시점에서 김치에는 새로운 비전이 주어졌다. 
한국이 김치의 종주국임을 천명하는 동시에 그에 걸맞은 위상 재정립이다. 이 과정이 순탄하고 환한 것만은 아니다. 
김치 수요는 식문화의 변화와 함께 매년 0.7%씩 줄고 있다. 
300여종에 이르는 허다한 김치의 종류도 단일화돼가는 추세다
여기에 중국 김치 최대 수입국이라는 오명도 김치 종주국이라는 사실을 무색하게 한다. 
한식 세계화의 첨병인 김치의 다양화와 함께 품질 향상, 레시피의 표준화, 시대의 창조적 변용이 필요한 시점이다
21세기 가장 핫한 음식의 자리가 멀지 않다.

이윤미 기자/meelee@heraldcorp.com

Updated 2013.11.08.
中 한나라때 한반도로 유입
소금에 절인 ‘짠지’의 형태
임란 전후 日서 고추 유입
조선시대 채소 재배기술 보급
‘침채→팀채→짐채→김채→김치’로…



“밭 두둑에 외가 열렸다. 이 외를 깎아 저(菹)를 담가 조상께 바치면 자손이 오래 살고 하늘이 내린 복을 받는다” 
김치에 관한 최초의 기록인 중국 ‘시경(詩經)’에 담긴 내용이다. 
여기에서 ‘저’가 가리키는 건 소금절임한 채소로, 바로 김치의 원형인 셈이다. 
시경이 쓰인 시기를 대략 2600~3000년 전으로 추정하니, 
대한민국 최고의 음식 브랜드 ‘김치’의 역사도 수천년의 세월을 거슬러 올라간다. 
한(漢)나라의 경우 관이 주도해 순무, 죽순, 미나리 등을 이용해 7가지 저를 담가 관리했다는 문헌 기록이 있는데, 이처럼 채소를 염장해 먹는 방식이 BC 108년께 낙랑을 통해 한반도로 전해지면서 비로소 우리 민족도 김치를 먹게 됐다는 게 유력한 설이다. 한민족과 김치의 인연은 2200년 정도 되는 셈이다. 
먹을 게 턱없이 부족하던 고대에는 소금에 절인 ‘짠지’가 김치였고, 지금과 같은 고춧가루가 가미된 것은 임진왜란 이후다. 
중략...

일본 도다이(東大)사가 소장하고 있는 ‘신라촌락문서’ 등의 기록에 따르면 
삼국시대 이전부터 김치를 담가 먹었던 것으로 추정된다. 
당시 농경문화가 발달에 따라 곡류를 주식으로 삼으면서, 곡물 소화를 돕기 위해 염분이 든 채소류를 함께 먹게 된 것이다. 

김치를 최초로 우리 문헌에서 확인할 수 있는 건 고려 때에나 가능하다. 고려 중기의 문인 이규보는 ‘동국이상국집’에 “순무를 장에 담그면 여름철에 먹기 좋고, 소금에 절이면 겨우내 반찬이 된다”고 기록해 김장의 역사를 확인할 수 있다. 
이 시기엔 오이, 미나리, 부추, 갓, 죽순 등 김치에 들어가는 채소가 다양해진 것은 물론 파, 마늘, 생강을 사용한 양념형 김치가 등장하기도 했다

그러나 당시의 김치는 여전히 장아찌나 소금절임 형태에 그쳤다. 
고춧가루나 젓갈을 쓰지 않고 소금에 절인 채소에 향신료를 섞어 재우는 형태라 해서 
‘침채(沈菜)’라는 특유의 이름을 붙이기도 했다. 
채소에 소금물을 붓거나 소금을 뿌려두면 숙성되면서 수분이 빠져나와 채소가 물에 잠기는 모습을 표현한 것이다. 
이 침채란 말이 나중에 ‘팀채→짐채→김채→김치’로 변화한 것이다. 
마찬가지로 김치를 담그는 작업을 뜻하는 ‘침장(沈醬)’이란 말도 ‘팀장→딤장→김장’으로 변화했다.

조선 시대에 이르러선 중농 정책에 따라 농업이 권장된 데다 인쇄술의 발달로 우리 환경에 맞는 농서가 널리 보급되면서 채소 재배 기술도 향상됐고, 덕분에 김치 종류도 다양해졌다. 하지만 
한민족 특유의 정서를 상징하는 ‘매운맛’은 임진왜란 이후에나 가능했다. 
선조 25년(1592년) 왜란을 전후해 일본으로부터 고추가 처음으로 전해진 것이다. 
고추는 당시만 해도 독성 물질로 여겨져 200여년간 식품으로 활용되진 않았다.

그러다가 19세기 초반부터 김치에 고춧가루가 들어가고, 젓갈이 다양하게 쓰이기 시작했다. 이를 두고 농민항쟁 등 당시의 격변하는 사회상이 매운 음식을 찾게끔 했다고 설명하는 이도 있다. 19세기 중반 유학자들이 쓴 책엔 고추, 마늘, 파, 젓갈 등의 양념을 김치에 많이 쓰라는 권유도 있다. 이는 채소를 염장하기 위한 구황식품으로 나라에서 하사하던 소금이 잦은 기근으로 부족했던 탓도 있다.이렇게 생겨난 매운맛에 배추가 결합하게 되는 것도 바로 이 무렵이다. 
과거 김치의 주재료는 오이, 무, 가지, 순무 정도였고 배추는 지금의 속이 꽉 찬 배추가 아니었다. 
속이 꽉 찬 결구형 ‘조선배추’를 처음 육종하기 시작한 건 
1850년대에 중국 산둥 지역에서 ‘호(胡)배추’를 들여와 개량한 이후부터다. 

조선배추 보급이 퍼진 이후에야 지금의 모습과 유사한 통배추 김치 제조법이 보편화될 수 있었다. 
담금법도 장아찌형, 물김치형, 박이형, 섞박지형, 식해형 등으로 다양하게 발달하게 됐고, 
제조방법에 있어서도 소금을 털어 토렴하는 절차를 거치는 2단계 담금법으로 발전하게 됐다.

이처럼 김치의 원조 격인 저(菹)의 역사는 수천년을 거슬러 간다지만, 지금의 모습을 온전히 갖춘 
김치의 역사는 이제 100여년에 그친다. 이에 근대화 시기 민족 정체성을 확보하기 위해 ‘조선의 전통’을 찾는 과정에서 김치를 ‘역사적으로 유구한 우리의 전통’으로 삼았던 데에 대한 자각의 목소리도 들린다. 
하지만 ‘한국인은 김치 없이 못 산다’는 사실만큼은 예나 지금이나 어디 가지 않는다. 

백웅기 기자/kgungi@heraldcorp.com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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